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2
자유로운 성생활의 이면에 존재한 영원한 소년이 되고 싶은 '피터 팬'
클림트는 평생 혼인하지 않고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14명의 여인들이 친자확인소송을 냈다. 많은 모델들과 관계했지만 그는 어쩌면 진정으로 안주할 여인을 찾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혼인하여 아기를 낳고 생활에 안주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부담되는 일이었을까? 클림트의 전기작가들도 그가 영원한 피터 팬이 되고 싶어했다고 짐작한다. 그것은 그가 오히려 사랑에 관한 한 이상주의자였음을 말해준다. 이상적인 사랑은 쉽게 오지 않는 것, 클림트에게는 이상적인 사랑을 나눌 만한 모델은 없었다. 오직 한 사람, 에밀리 플뢰게라는 여인은 클림트의 진정한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플뢰게는 클림트와 늘 함께한 정신적 반려였지만, 두 사람이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클림트의 명작 <키스>의 여주인공이 플뢰게라고 짐작하고 있다.
실로 <키스>는 남녀가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 같지는 않다. 여성이 수동적인 것을 넘어서 오히려 거부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자는 입술이 아니라 볼에 키스하고 있다. 입술을 굳게 다문 여성의 표정도 황홀함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두 사람은 몸을 잘못 놀리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는 절벽 위에서 키스하고 있다. 결국 <키스>는 클림트가 꿈속에서 그려본 이상적인 여인인 플뢰게와의 사랑을 그린 것이 아닐까? 아직도 <키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키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작품의 신비함에 이끌리고 더 황홀해하는지도 모른다.

아터 호수에서 플뢰게와 클림트, 그리고 친구들(좌), 1903년 무렵의 클림트(우)
1918년 1월 11일 클림트는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그는 다급하게 “미디를 오라고 해!”라고 소리쳤다. 미디는 에밀리 플뢰게의 애칭이었다. 플뢰게는 급히 달려와 클림트가 저세상으로 갈 때까지 그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 2월 6일 클림트가 죽은 후 플뢰게는 많은 서신들을 태워 그의 비밀을 없앴다고 한다. 플뢰게는 1952년 세상을 뜰 때까지 구스타프의 추억을 안고 살았다. 클림트의 마지막에는 또 혈육 못지않게 절친했던 에곤 실레가 함께했는데, 실레는 클림트의 마지막 모습을 그림 속에 담았다. 묘하게도 빈 분리파의 주축 멤버였던 오토 바그너, 콜로만 모저, 그리고 에곤 실레도 같은 해에 죽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속에 숨은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자유를 향한 열망
구스타프 클림트는 생전에 이미 유명 작가였지만, 한편으로는 영욕이 교차하는 경험을 거듭했다. 그가 빈번하게 그린 나체와 섹스 장면이 줄곧 문제되었던 것이다. 클림트 사후 약 50년 동안 클림트나 그의 동료이자 제자인 에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카의 작품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클림트는 무덤에서 벌떡 일어서게 된다. 20세기의 세기말이 19세기의 세기말과 비슷해서일까? 클림트의 작품들이 급부상하더니 클림트는 이제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가가 되었다. 한때는 외설로 여겨졌던 것이 지금은 참으로 부드러운 낭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인간의 육체가 발하는 미묘한 숭고함을 느낄 수 있다.
클림트의 전기를 쓴 니나 크랜젤은 이렇게 말한다. “빈이 낳은 유명한 예술가 클림트가 만약 자신의 작품이 현재 얼마나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볼 수 있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지금 오스트리아 예술의 간판스타로 이름을 올렸고, 그 당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던 작업 방식은 일상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그의 그림에 나왔던 모티프들은 다양한 상품으로 둔갑하여, 넥타이, 열쇠고리, 도자기, 게임용 카드, 퍼즐 등으로 다시 나온다. 우리는 다양하게 다가오는 그의 생애와 예술을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즐긴다. 그는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 스핑크스는 우리가 답을 맞히지 못하더라도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민하고 즐길 뿐이다. 그의 그림을 즐기다가 우리는 문득 그가 향락 속에 빠진 듯한 생활 속에서도 진정한 사랑과 자유를 갈구했음을, 끝내 그것들을 구할 수 없었음을 가슴 아프게 확인하고야 만다. 그러나 그의 작품만은 인간 구원의 황홀경을 참으로 숭고하면서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구스타프 클림트에 열광하는 이유가 아닐까?
[출처]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2|작성자 nodamecanta